전시회에 간 것은 딱히 할일이 없었기 때문인데, 갈만한 전시를 고르고자 찾아본 유튜브 채널 [너를위한문화예술]에서 5월에 갈만한 전시로 [나너의 기억]을 추천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여러명의 당사자들은 각자의 해석으로 사건을 기억한다. 어떤일에 대한 기억은 나만의 것이아니고 나와 너, 사회적 관계에서 공동의 작품인 것이다.
[나너의 기억] 전시는 저마다 다양한 의미를 갖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여러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어플에서 오디오 도슨트를 제공하기에 혼자여도 풍부한 감상이 가능했다. 오히려 요즘 드는 생각은 혼자이기 때문에 나만의 개성있는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구태여 같이 전시 관람에 동행할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관람 후기를 작성하는 데 더 좋은점도 있다.
나의 그리고 너의 기억, 이렇게 쓰고보니 [나너의 기억]이라는 제목보다도 더 좋은 제목인 것같다.앤디 워홀 <수면>,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워홀이 친구가 자는 모습을 5시간이나 끈질기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5시간 동안 원테이크로 촬영한 것은 아니고 4분여의 영상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인간은 수면을 통해 기억을 정돈한다.허만 콜겐 <망막>, 인간은 대부분의 데이터를 시각을 통해 얻는다. 이 작품은 세상이 망막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희미하게 투영되는 이미지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망막을 표현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양정욱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작가가 편의점 알바를 하는 동안 인상깊게 본 경비실과 경비원을 보며 구상한 작품이라고 했다. 가운데 불빛으로 인해 벽에 생긴 그림자들은 꿈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작품은 모터로 구동되어 나무와 플라스틱 병이 부딪히는 목탁과 같은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가 이번 전시회의 bgm을 담당한다. 거슬리지 않는 소리이고, 두드리는 소리가 내 기억이 형성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아 흥미롭다.아크람 자타리 <스크립트>, 내 머릿속에서도 그렇고 이슬람에대한 일반적인 일반적인 이미지는 과격하고 극단적이다. 작가는 이를 인지하고는 충격을 먹고 일상의 이슬람 가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기도 의식을 행하는 아버지를 올라타고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내가 그동안 이슬람을 편견으로만 바라보았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작품을 보는 동안은 그렇게 느꼈다.임윤경 <Q&A>, 작가와 작가집의 외국인 가정부, 딸 여러명을 대상으로 인터뷰가 진행된다. 일반적일 수 있는 인터뷰가 비로서 작품이 되는 지점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각각의 디스플레이에 나온다는 점이다. 하나의 디스플레이는 마치 작품의 인물 각각의 세계관과 인식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한명의 개인으로서 저 네모를 벗어나 세상이나 사건을 인식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반면, 저 네모 밖의 사람이 저 네모를 이해하기도 역시 무척 어렵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경솔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난 다른 사람의 저 네모를 알기가 너무나도 힘이들다못해 불가능인것 같다.시프리앙 가이야르 <호수아치>, 바보같은 작품이다. 두명의 청년이 호수에 다이빙을 하는데 알고봤더니 호수가 너무 얕아 한명이 코를 박고 피를 철철 흘린다. 오디오 도슨트는 이 청년들 보다도 뒷편의 건축물을 보다 상세히 다루는데, 저 건축물은 원래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거의 쓸모가 없어져 버려졌다고 했다. 바보같은 청년들도 그렇고, 의도와 다르게 버려진 저 건물들이 어딘지 비슷하다. 그런데 한편의 해프닝 같은 이 영상이 각본있는 작품인 것지, 일상의 동영상에 제목을 붙여 작품이 된 것인지가 궁금하다. 난 이 작품을 보며, 몇년전 바닷가에 부모님과 가서 찍었던 영상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슬리퍼가 바다로 떠내려가서 아버지가 급하게 건져내는 동영상이 였는데, 우스우면서도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동영상이라는 점에서 연상이 되었다.
세실리아 비쿠나 <나의 베트남 이야기>, 베트남 전쟁 속의 여성들의 기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른쪽 사진을 기억을 다루는 영상을 보며 또 다른 기억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찍어봤다. 나 역시 기억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다른 기억을 기억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루이즈 부르주아 <코바늘 Ⅳ>,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빨간선은 진짜 빨간실이다. 시작과 끝을 알수 없이 복잡하게 엮여있는 작품은 기억을 나타낸다. 정말 실타래의 처음과 끝이 안보이는 지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실들은 앞으로의 일들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과거를 의미한다고 했다. 복잡한 모습이 과연 삶과 기억들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뮌 <오디토리움>, 각각의 칸에는 각가의 사건을 표현했다고 한다. 작품의 전면에는 흐릿한 그림자 형상으로만 비춰지는데 특이하게도 뒷편도 관람하도록 되어있다. 즉, 앞면과 뒷면과 모두 작품인 것이다. 각각의 칸들의 사건들은 서로 관련이 없는데, 정말 내 머리속의 여러 사건들이 이 작품 처럼 보관되어 있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안리 살라 < 붉은색 없는 1395일>, 전쟁중 저격을 피하기 위해 붉은색 옷을 입을수 없었던 1395일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전쟁은 인간사에 매우 흔한일임에도 전쟁을 겪지 않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박혜수<기쁜 우리 젋은 날>,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다. 작가는 구로디지털단지 여러 근로자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첫사랑을 그림으로 그렸다. 마지막에는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인터뷰 영상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화면을 양분할 하여 왼쪽에는 인터뷰 영상을, 오른쪽에는 인터뷰 내용을 회화화하여 그려내는 영상을 보여주는 점이다. 특이하게도 단순히 화면을 양분할 하는 것만 아니라 90도 벽면으로 구성하여 입체화했다. 단순히 영상속 인물들의 첫사랑 얘기를 전해 듣는 것만 아니라 내 이야기도 그려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줍어하거나 웃거나, 혹은 자랑스러워하는 각자의 첫사랑 얘기가 너무 재밌었다. 정말 일반인들의 얘기여서 내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홍순명 <비스듬한 기억-역설과 연대>, 초대형 작품이다. 작가는 어릴적 바다에 빠져 위험했던 순간 보았던 바다의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한편 하나의 캔버스의 그리지 않고 여러 조각의 캔버스에 나누어 그려 바다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나역시 이작품을 바라보며 어릴적 동생이 파도에 슬쩍 끌려가고 있을때, 아버지가 급하게 붙잡아 위험을 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 역시 나와 동생을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기억들이 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방문한 전시지만, 각각의 작품을 감상하며 내 기억들을 회상하며 시간 가는줄 몰랐던 전시였다. 서로 아무 연관없을 수 있었던 작품들이, '기억'이라는 주제로 훌륭히 전시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후에 [히토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시회를 이어서 관람하려고도 했지만, 이미 풍부한 전시 관람을 했기때문에, 이날 더이상의 관람은 과유불급을 느꼈다. 머지않아 남겨놓은 전시를 관람하리라. 그때는 혼자가 아니여도 괜찮을 것 같다. 겉보기에 누군가와 같이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 전시였기에 그렇다.